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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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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팡이 | 2013.02.20 13:23 | 조회 10281



    세계 최대의 해난 사고, 1912년 4월 14일 1만 6천 톤의 여객선 타이타닉이 북대서양 항해 중 침몰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때 희생자가 무려 1,517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영화로 제작되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감동을 주었고,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 속에 잊혀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퍼씨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그 큰 배가 난파되고 바다위에 떠 있는 몇 분 동안 그는 옆에 있는 청년을 향해 안간힘을 쓰며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았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청년은 대답합니다. ’아니요’. 파도가 둘을 떼어 놓았습니다. 잠시 후 다시 청년 곁으로 온 하퍼씨는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과 화해 했나’라고 물었습니다. 청년은 ‘아직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큰 파도가 밀려와 하퍼씨를 삼켜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구원 받았나?’라고 물었던 물음이 그 청년의 귓가에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 청년은 그 후 예수님을 영접하고 뉴욕의 교회에서 간증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죤 하퍼씨의 마자막 구원자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존 하퍼씨는 시카고 무디 교회에 설교를 하러 가던 목사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종종 교회 안에서든 밖에서든 ‘구원받았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당신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한때 ‘구원파’라는 이단 집단에서는 ‘몇 년, 몇 월, 몇 시’ 자신이 구원받은 사실을 알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 것이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 일시를 아는 것이 구원의 조건인양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구원의 확신’이 있다면 감사할 일이거니와 혹여 확신이 없다해도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잘못된 확신이 이단과 사이비 집단 속에 자신의 영혼과 가족을 절망감에 빠뜨렸는지 우린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보도했던 ‘십계석국’이라는 사이비 종교 집단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행동을 교주가 일삼는데도 따르는 무리들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확신들이 낳은 결과입니다. JMS나 통일교의 신봉자들은 어떻습니까? 잘못된 진리인지 세상은 아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모르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구원이 있노라 말입니다.

    성경을 가만이 읽어보면 분명하게 구원의 조건과 과정에 대하여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물론 구원의 문제는 사람이 분별하고 파악 할 수 없습니다. 이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고 진행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편에서 할 수 있는 일과 아는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누가복음 19장 삭게오 사건을 보면 엿보입니다.

    분명한 구원은 오직 예수님 많이 구원자이시고, 그 구원자 이신 예수님은 사모하는 자에게 찾아와 주시고, 그 분을 영접하고 진정한 회개의 역사를 보이는 자를 향하여 구원을 선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 삭게오의 반응입니다. ‘전인적인 회개’의 모습입니다.

    죄는 ‘하나님 앞에 지은 죄’와 ‘사람 앞에 지은 죄’가 있습니다. 자칫 하나님 앞에 지은 죄만 해결하면 회개한 줄 압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는 이 두 가지에 대한 문제를 다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삭게오는 자신이 잘못하고 토색한 것이 있다면 4배로 갚겠노라 고백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고국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죽을 뻔 했다’, ‘살 뻔 했다’. ‘될 뻔 했다’, ‘안 될 뻔 했다’, ‘잡을 뻔 했다’, ‘놓칠 뻔 했다’, ‘먹을 뻔 했다’, ‘못 먹을 뻔 했다’. 재미난 말입니다. 앞 말의 일이나 동작이 실제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는 어찌되었다는 것입니까? 반대적인 상황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 안에도 이런 모습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를 건축하여 봉헌을 하고, 어떤 분은 교회 안에 봉사를 열심히 하고, 어떤 분은 전도를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구원 받을 뻔한 분들’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구약시대에도 신약 시대에도 현대에도 우리 주변에도 아주 많습니다.

    얼마나 가슴 아픈 이야기 입니까? 함께 신앙 생활하고, 함께 믿음의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 같은데 ‘구원받지 못한 자’가 되다니 말입니다. 그것을 알 수 없다면서 어찌 그리 말하느냐구요? 마태복음 8장이나 누가복음 6장 등에 보면 우리 주님은 구원 받은 자에게는 ‘열매’가 있다 하셨습니다.

    주님을 만난 진정한 흔적, 회개의 열매가 말입니다. 한 두 시간, 몇 일 만에 보여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저 잠시 잘 보이려 애써서 될 일이 아닙니다. 아마 주님의 구원의 선포를 들었다면 평생을 이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살 뻔 했습니까?’, ‘죽을 뻔 했습니까?’ 비록 누구처럼 ‘몇 날, 몇 시’라고 대답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주님을 만난 흔적과 회개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구원의 선포가 당신의 삶에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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