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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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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팡이 | 2013.09.19 05:44 | 조회 11813



    나에게는 경찰 배지가 하나 있습니다. 워싱턴DC 지역 '경목(Police Chaplain)'이 되면서 받은 것입니다. 나는 미국 생활 중 10년 가까이 교통 스티커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모범적으로 운전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시는 분들은 내가 얼마나 급하게 운전을 하는지 압니다. 기억으론 두 세 번 경찰에게 붙들린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배지'는 스티커를 받아야 할 상황을 교묘히 넘어가는 면죄부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 후로는 내가 운전을 어떻게 하느냐는 별 중요치 않게 생각되었습니다. 나를 잡는 경찰이 오히려 안 됐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습니다. 시간만 낭비하고 그냥 보내줘야 하니 말입니다. 얼마나 오만방자한 생각인지 모릅니다.

     

    지금은 '배지'를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한 번은 아내와 집안 정원을 손질하다가 벽돌을 사러 나온 길이었습니다. 신호를 지나 달리는데 뒤에서 경찰차가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면허증과 차량 등록증을 달라는 것입니다. 난 예전처럼 미안하다고 그저 형식적으로 인사하며 '배지'를 면허증 대신 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배지를 받아든 경찰의 표정이 놀라웠습니다. 아니 왜 이걸 내보이느냐? 는 표정입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이냐? 는 듯이 말입니다. 오히려 당신이 하는 일이 뭐냐? 는 듯 추궁까지 이어졌습니다.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10년 만에 스티커를 받고 종일 그 날의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으로 보였을까? 하는 마음에 그 사람이 성도였다면,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속으로 비난했을까? 고민하면서 겸손하게 오히려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이 그 직분과 배지로 오히려 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온 나의 모습이 부끄러웠던 것입니다.

     

    신앙에도 이와 같은 모습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은 이미 아는 바요 듣고, 본 바 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고 믿음으로 그 권세와 능력을 누리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권세와 능력을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 모르는 듯 보입니다. 그저 자신의 위기돌파나 분위기전환용으로만 사용하고 있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주님이 성도에게 주신 사명들이 있습니다. 이 땅 위에 머무는 동안에 그리스도인으로 그리스도의 그림자요 천국의 대사로 사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는데 주님의 권세와 능력은 사용 돼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명은 온데간데 보이지 않고, 오히려 내가 좀 잘못해도, 다른 사람들보다 문제가 많아도, 교회 찾아가 종교 생활 좀 하면 용서해 주시고, 기도하면 도와주실 것으로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회 앞에 나아와서 기도할 때에도 눈 한번 딱 감고 도와달라듯 생떼를 쓰며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성도에게 주신 권세와 능력은 그렇게 무조건 안 들키고, 잘 풀리고, 잘 넘어가도록 사용하게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진 것을 부끄러워하며 그 가진 것이 나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사명이고 내가 살아가야 할 도리임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남보다 우월하게 맡기신 것이 있습니까? 그것이 선천적이든, 후천적으로 얻어진 능력이든 당신을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 것들로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고, 혹은 남보다 우월한 혜택을 누리며 살게 한다면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세상 어떤 권세보다 우월한 능력과 권세를 지니신 분이시지만 가장 어려운 길, 좁은 길, 섬김의 길을 가셨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 주님의 모습을 따르기 위해 자신이 가진 '권(權-Right, Authority)'을 사용치 아니하고 섬기는 '종'이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고전9:18-19)

     

    요즘 너도나도 '특별한 권세'를 좋아하고, 드러내기 좋아하는 시대입니다. 오히려 그것이 당신을 부끄럽게 만들고,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Ki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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